옥토끼 우주센터

옥토끼 우주센터는 북향으로 20여 미터 경사진 강화도산지 8,000여평의 대지에 계획된 우주과학 테마파크입니다.
어린이들이 우주과학, 항공, 로켓, 항공우주 체험시설 등을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이단지는 다양한 실내외 전시, 놀이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된 실내공간은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시관은 대부분 경사 지형에 묻혀있는 반 지하공간으로 외부 노출을 최소화하여 기존 지형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지형을 형성화 하였습니다. 이 지하건물의 노출부위들은 복잡한 지형, 건물에서의 다양한 레벨들과 다양한 방향을 연결하는 동선체계입니다. 이 체계는 마치 히드라의 촉수처럼 건물에서 출발하여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갑니다. 이중 하나의 촉수는 수직방향으로 확장되어 천체관츨 탑을 구성하며, 3차원적인 건물 구도로 형성화되었습니다.

강화 갯벌센터

강화도 남단의 갯벌은 세계 4대 갯벌중의 하나로서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되었으며 그 크기가 여의도의 52.7배에 달합니다.
2005년 통나무갯벌센터를 설립하여 밀물 썰물의 드나듦을 알 수 있는 수족관 및 저어새 모형의 전시관을 설치하고 2층은 전망대 디오라마 전시실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강화갯벌센터에 방문하시면 갯벌과 생물, 갯벌의 중요성 등 재미있는 갯벌이야기와 더불어 농게의 힘자랑, 염생식물 관찰, 저어새 관찰 등이 가능하여 갯벌을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교육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보문사

635년(선덕여왕 4) 회정이 창 권하였다고 하는데, 649년(진덕여왕 3)에 어부들이 불상과
한 천진 석상 22를 바다에서 건져내어 천연 석굴 안에 봉안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입구에 3개 홍예문을 설치하고 천연동굴 내에 반월형 좌대를 마련하고 탱주를 설치했는데, 탱주 사이에 21개 감실이 있어 거기에 석불을 안치하였습니. 이 석실은 지방유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또 1928년에는 절 뒤편 절벽에 높이 32척 너비 12척의 관음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마애 석불좌상은 지방 유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석실 옆으로는 민속 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지름 69cm, 두께 20cm나 되는 보통의 것보다 약 2배 가량 큰 맷돌이 있으며, 중창불사를 끝낸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이 절마당에 위치해 있습니다. 눈썹바위의 마애석불은 절마당에서 약 8분 정도 올라가면, 서해 바다의 경치와 시간이 맞는다면 석양까지 볼 수 있습니다.

고려궁지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입니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으며,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고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습니다. 39년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습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으나 후에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습니다.

동막해수욕장

천혜의 갯벌을 품은 강화도 본섬의 유일한 해수욕장입니다.
바닷가 명소로는 강화도 남쪽의 화도면 장화리에서부터 동막리에 이르는 해안도로가 으뜸으로 손꼽을 만하며, 도로변이나 인근 음식점의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서도 편안하게 일몰을 감상할 수 있고, 분오리 돈대에서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석모도에서는 민머루해변이나 장구너머포구가 일몰 감상의 포인트입니다. 활처럼 휘어진 해변은 물이 빠지면 끝없이 펼쳐진 갯벌이 드러나 조개, 칠게, 고둥, 가무락 등이 다양한 바다 생물들이 많이 잡혀 아이들과 함께 갯벌체험을 즐기기에 아주 좋습니다. 2002년 강화 남부와 김포를 잇는 초지대교가 개통되면서 해수욕장과 갯벌을 찾는 발길이 잦아졌습니다.

초지진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 (1656)에 구축한 요새입니다.
고종3년(1866)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 극동함대 및 고종 8년(1871)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로저스의 아세아 함대, 고종 12년(1875) 8월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입니다. 일본군함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에 강압에 의한 강화도 수호조약(병자수호조약)를 맺어 인천, 원산, 부산항을 개항하게 되고 또한 우리 나라의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당시 이 진에는 병마첨절제사 1인, 군관11인, 군사 320인, 전선 3척이 주둔하고 있었다합니다. 이곳은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으로 애국애족 및 호국정신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1973년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전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주변경관이 시원하여 역사적 현장으로뿐만 아니라 관광지로도 유명한곳입니다.

마니산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으로, 마리산(摩利山)·마루산·두악산(頭嶽山)이라고도 합니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69.4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永宗島)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산정에는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塹城壇:사적 136)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聖火)가 채화됩니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종휘(李種徽)가 지은 《수산집 修山集》에 "참성단의 높이가 5m가 넘으며, 상단이 사방 2m, 하단이 지름 4.5m인 상방하원형(上方下圓形)으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여러 차례 개축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산 정상의 북동쪽 5㎞ 지점에 있는 정족산(鼎足山)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사적 130)이 있고, 그 안에는 유명한 전등사(傳燈寺)가 있다. 남서쪽 기슭에는 정수사법당(淨水寺法堂:보물 161)이 있고, 북서쪽 해안에는 장곶돈대(長串敦臺:인천기념물 29) 1기(基)가 있습니다.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주변에 문화유적지가 많아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고 있으며, 1977년 3월 산 일대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습니다.

전등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정족산성(鼎足山城) 안에 있는 사찰입니다.
381년(소수림왕 11)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습니다.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王)·충혜왕(忠惠王)·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습니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때 정화궁주는 승려 인기(印奇)에게 《대장경》을 인간(印刊),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이 절에는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79호인 전등사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범종(梵鐘)이 있고, 대웅전에는 1544년(중종 39)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改版)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목판 104장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광성보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고려시대의 외성을 보수하고, 1656년 광성보를 설치된 광성보는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 화도, 광성의 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이 보에 소속되어있습니다.
1745년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되어 당시 성문도 설치되었습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4월 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당시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 이하 전 용사가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웠는데,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싸우고 칼과 창이 부러지면 돌과 맨주먹으로 싸워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고 장렬히 순국하였다고 합니다. 이 전투 후 성책과 문루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7년 안해루, 광성돈, 손돌목돈, 용두돈과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묘, 그리고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각 등이 모두 보수 정화되었으며, 이 때 세운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가 용두돈대 위에 서 있습니다. 1998년에는 해변쪽으로 넓은 휴식공간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에게 이용 편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광성보는 현재 사적 제 2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4월 24일에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하여 장렬하게 전사한 무명용사들에 대한 광성제가 11:00부터 봉행됩니다. 이 광성보는 당시에 사용한 대포와 포대, 성이 잘 남아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답사 오기에 좋으며,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과 돈대의 곡선 모양이 인상적입니다.